유지나 지방을 다량 함유한 식품이 저장 중에 산소를 흡수하여 산화되거나 알칼리나 효소에 의해 가수분해가 일어나는 현상을 산패(rancidity)라고 한다. 산패된 지질은 맛, 색, 냄새 등이 변하고 점도가 증가하며 독성물질이 생성되기도 한다.
산패의 종류
산패는 보통 상온 부근에서 일어나는 자동산화와 조리 시 고온에서 일어나는 가열산화로 크게 나누지만 자세하게는 산화적 산패와 비산화적 산패로 구분한다. 산화적 산패에는 자동산화, 가열산화, 효소산화가 있으며, 자동산화는 상온에서 광선이나 금속이온의 존재하에 산소와 결합 후 과산화물을 생성하는 것으로 좁은 뜻에서의 산패를 말한다. 자유라디칼에 의한 연쇄반응으로 진행된다. 가열산화는 공기 존재하에 100~200℃로 가열 시 일어나며 자동산화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유리지방산이 생성되고 중합반응이 일어나면서 점성도 증가한다. 효소산화는 리폭시다아제, 리포하이드로퍼옥시다아제에 의한 산화를 말하며, 곡류, 콩류 등의 식물체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산화적 산패와 반대로, 비산화적 산패에는 가수분해형 산패와 케톤생성형 산패가 있는데, 가수분해형 산패는 물, 산, 알칼리, 가수분해 효소 등에 의한 산패로 트리글리세리드가 글리세롤과 유리지방산으로 가수분해되는 것을 말한다. 불쾌한 냄새나 맛을 형성해서 유지를 변질시킨다. 케톤생성형 산패는 저급 지방산을 함유한 유지에서 미생물의 작용으로 생성되는 케톤이 원인이 되는 본래의 향이 아닌 다른 냄새를 형성한다.
자동산화에 의한 산패
- 유도기간 induction period
유지는 상온에서 대기 중의 산소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서서히 산화가 진행되는데, 산소의 흡수속도는 처음 일정한 기간 동안은 매우 느린 속도로 일어나다가 그 기간이 지나면 급진적으로 산소를 흡수한다. 산소의 흡수속도가 처음부터 급격하게 증가하는 시점까지를 유도기간이라고 하며, 이 기간일 때 유지는 매우 안정한 상태로 존재한다. 유도기간이 지난 후에는 산소의 흡수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자동산화의 최종산화물인 각종 카르보닐 화합물들의 생성량도 증가하면서 점도도 높아진다. 반면 자동산화의 일차생성물인 과산화물은 자동산화가 진행되면서 생성량이 증가하다가 후반기에는 분해량이 많아져서 점차 감소하게 된다.
- 자동산화의 기작
- 개시 단계(initiation step) : 유지의 자동산화는 가열, 광, 화학, 기계적 에너지, 금속이온 등의 존재하에 불포화지방산의 이중결합 옆의 메틸렌기(-CH₂-)의 수소가 떨어져 나가고 자유라디칼(R · )이 생성되면서 시작된다.
RH -열,- 빛,-- 금속-이온→ R · H ·
불포화 지방산 라디칼
- 전파 단계 (propagation step, 연쇄 단계) : 생성된 라디칼은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해 과산화라디칼(peroxy radical)을 형성하고, 다른 유지분자로부터 수소를 떼어내 과산화물(hydroperoxide)과 유리라디칼을 만든다. 이런 반응은 연속적으로 일어나며 지방산의 대부분의 이중결합이 거의 없어질 때까지 반복된다. 과산화물은 생성되면 바로 분해되는데, 이때 각종 휘발성 화합물을 형성해 이취(바람직하지 않은 냄새)를 형성하게 된다. (자동산화 후기에는 과산화물은 감소하고 휘발성 카르보닐기 화합물들이 증가한다.)
R · + O₂ → ROO ·
페르옥시라디칼
ROO · + R' H → ROOH + R'
다른 히드로페르옥시드(과산화물)
불포화지방산
(R · + O₂ → ROOH → RO · + OH)
- 최종 단계(tormination step) : 전파단계에서 생성된 각종 라디칼과 중간 산화물들이 서로 결합해서 이중체, 삼중체 등의 중합체를 만들고, 이 산화물들의 형성으로 색이 검게 변하고 점성이 증가하게 된다. 이 중합체는 라디칼이 아니라서 반응성이 상실, 연쇄적으로 이뤄지던 반응이 끝나게 된다.
ROO · + R'OO · → ROOR' + O₂
ROO · + R' · → ROOR'
R · + R' · → R ─ R'
- 산패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
유지의 불포화도 : 불포화지방산이 포화지방산보다 산화되기 쉬우며 이중결합 수가 많아질수록 산화 속도가 증가한다.
광선 : 유지에 광선을 조사하면 유도기를 단축시켜 유지의 산화가 빨라진다.(기름병이 불투명한 이유가 된다.)
온도 : 온도가 상승하면 산화 속도는 증가한다.
수분 : 수분활성도가 증가할수록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수분 함량이 아주 낮은 건조식품에서의 자동산화는 매우 빨리 일어난다. 하지만 단일분자층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수분이 존재하면 오히려 산소와의 접촉이 차단되어 산화가 억제된다.
산소의 농도 : 산소가 충분하면 산화속도는 산소농도와 무관하지만 산소 농도가 아주 낮으면 산화속도는 산소의 농도에 비례한다.
효소 : 지질 가수분해효소(리파아제, 에스터라아제, 포스포리파아제 등)의 작용에 의해 유리지방산이 형성되면서 자동산화가 촉진된다.
중금속 : 코발트, 구리, 철, 망간, 니켈 등과 같은 중금속은 자동산화 중 생성된 과산화물의 분해를 촉진시키고 유리라디칼을 형성, 산화의 연쇄반응을 촉진한다.
헤마틴 화합물 : 헤모글로빈, 미오글로빈, 시토크롬 등의 헤마틴 화합물(혈색소)들은 유지의 산화를 촉진한다.
가열산화에 의한 산패
튀김 식품의 조리 중에 유지는 140~200℃의 높은 온도에서 가열되면서 가열반응과 산화반응이 동시에 일어나 매우 빠른 속도로 산화가 진행된다. 이때 유지의 점도, 비중, 굴절률, 산가, 과산화물가는 증가하고 요오드가는 감소하며 발연점은 낮아진다.
- 유리지방산의 생성 : 유지의 고온 가열 시 유지가 가수분해되거나 열분해 되어 지방산과 글리세롤을 생성한다. 이때 생성된 유리지방산은 발연점을 낮추고 산패를 급증시켜 유지의 안정성을 저하시킨다. 생성된 유리지방산의 양을 측정하는 산가에 의해 산패 정도를 판정할 수 있다.
- 중합반응 : 유지의 가열산화 시 이중체, 삼중체 혹은 그 이상의 중합체를 형성하면서 두 분자의 부가반응으로 환상의 중합체가 생성되기도 한다.
- 점성증가 / 발포현상 : 중합반응의 결과로 고분자의 산화중화물이 형성되면서 점성이 증가하고, 오래 사용한 튀김유 표면에 잔거품이 지속적으로 형성되어 남는 현상(발포) 현상이 생긴다.
변향 flavor reversion
콩기름이나 리놀레산을 함유한 유지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현상으로, 풀냄새나 콩 비린내 등을 제거했어도 저장하면 다시 냄새가 나는데, 이 냄새는 산패가 일어나기 전에도 맡아져서 산패와는 다르며, 정제 전의 냄새로 복귀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항산화제 anticxidant
항산화제는 유지의 산화속도를 억제하는(유도기간을 더 길게 늘여주는) 물질로, 산화방지제라고도 한다. 항산화제의 작용기작은 자동산화의 개시단계에서 ⓐ유리라디칼의 생성을 저해하거나 ⓑ그의 전파를 막아 자동산화를 중지, 지연시키는 것이다. 연쇄반응에 참여할 각종 활성 유리라디칼에 자신의 수소원자를 줘서 안정한 화합물을 만들고 항산화제는 유리 라디칼(A ·)이 되어 능력을 상실한다. 이때 ⓒ상승제(synergist, 항산화력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다른 항산화제와 같이 사용하면 항산화력을 증가시키는 물질. 구연산, 인산, 주석산, 사과산, 비타민C)가 있다면 수소를 받아서 능력을 복구할 수 있다. 천연 항산화제로는 토코페롤(비타민 E), 세사몰(참기름), 고시폴(목화씨), 레시틴(콩), 폴리페놀성 화합물, 플라보노이드, 로즈메리, 세이지, 계피, 정향 등의 향신료가 있고, 합성 항산화제로는 부틸히드록시아니졸(Butylated Hydroxy Anisole, BHA), 부틸히드록시톨루엔(Butylated Hydroxy Toluene, BHT), 부틸히드로퀴논(Teritary Butyl Hydro Quinone, TBHQ), 몰식자산 프로필(propyl gallate, PG), 에틸렌디아민사초산(Ethlene Diamine Tetra Acetate, EDTA)이 있다.
ⓐ
R · + AH₂ → RH + AH ·
ROO · + AH₂ → ROOH + AH ·
AH · + AH · → AH₂ + A
(라디칼에 수소원자 제공, 라디칼 제거)
ⓑ
R · + AH · → RH + A
ROO · + AH · → ROOH + A
(라디칼에 전자를 제공, 라디칼 제거)
ⓒ
A · + SH → AH + S
AH · + SH₂ → AH₂ + SH ·
(상승제로 항산화 능력 복원)
- 유지의 산패도 측정방법
산패 측정은 1차적으로 유지에 흡수된 산소나 산화물의 양을 측정하여 판단할 수 있고, 2차적으로는 과산화물의 분해산물을 측정해 판정할 수 있다.
- 과산화물가 : 과산화물의 생성량을 측정하는 데 쓰이며 유지 1kg 중 생성된 과산화물의 mg당량수로 나타낸다. 산화된 유지와 요오드화 칼륨(KI)을 반응시켜 생성된 I₂를 NaS₂O₃로 측정한다. 산화 중 최고값에 도달한 뒤엔 감소해서 산패한 지 오래된 유지는 낮게 측정된다. 과산화물가 10 이하면 신선한 유지로 판단한다.
- TBA(Thiobarbituric acid value)가 : 이차산화생성물(말론알데히드)의 양을 측정하는 데 쓰이며 TBA시약과 말론알데히드가 반응해 생성되는 적색 색소 농도를 비색정량해서 얻는다. (정량 530nm) 산화 진행에 따라 계속 증가하며 향미값과 일치하는 편이다.
- 카르보닐가 : 카르보닐 화합물의 생성량을 측정하는 데 쓰이며 최종 생성되는 알데히드나 케톤화합물이 2,4 - dinitrophenyl hydrazine과 반응하여 생성되는 적색색소를 비색정량해서 얻는다.
- 활성산소법(Active oxygen method, AOM) : 유지산패의 신속측정법으로 유지를 97℃의 물로 중탕하면서 공기를 불어넣어 산패를 촉진시켜 유지의 과산화물가를 측정한다. 유지의 산패유도기간을 측정할 수 있다.
- 랜시매트법(Rancimat method) : 유지산패의 신속측정법으로 유지를 100℃로 유지시키고 AOM법과 같이 공기를 주입하면서 생성되는 산화생성물을 전기전도도로 측정하는 방법이다. AOM과 마찬가지로 유지의 산패유도기간을 측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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